태그 : 국가대표
뭔가 서론을 써보고 싶은데 딱히 쓸말이 없답니다. 그냥 바로 들어갈께요. ;ㅅ;
K리그 신인왕은 85 시즌부터 신설되어 지금까지 총 22명이 배출되었습니다. 곧 있으면 2007 K리그 신인왕도 발표 되니 총 23명이 되겠군요. 이 22명 중 수비수는 91년 조우석, 93년 정광석 2명에 불과하고 미드필더와 공격수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양상입니다. 신인왕 선발은 각 구단마다 1명씩 신인왕 후보를 추천한 후 기자단 투표로 결정되며 (참고로 K리그 올해의 MVP, K리그 올해의 감독상도 마찬가지로 기자단 투표로 결정됩니다.) 총 투표 수는 65~80표 정도더군요.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신인왕 수상자들의 활약상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85시즌 첫 신인왕은 이흥실. 85시즌 포항제철에서 MF로 데뷔 후 21경기 출장 10골 2도움의 빼어난 활약으로 85시즌 신인왕을 거머쥔데 이어 2년차 징크스를 가볍게 무시하며 86시즌 축구대제전 MVP를 차지했었죠. 거기에 87시즌에는 29경기 12골 6도움으로 득점순위 2위, 도움순위 2위에 오르면서 가히 K리그의 자타가 공인하는 최정상 키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합니다.. 88시즌 부상으로 16경기 1골 2도움에 그쳤지만 89시즌 39경기 출장 4골 11도움으로 도움왕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80년대 K리그를 평정해버렸습니다. 85년부터 92년까지 오직 포항만을 위해 뛴 포항의 레젼드이자 5차례의 K리그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 선정에 K리그 5경기 연속골 기록 타이틀 보유까지.. 득점왕을 제외하고 K리그 선수로서 받을 수 있는 영예를 모두 거머쥔 K리그의 전설. 8년간의 약간은 짧은 프로생활을 끝내고 93년부터 2005년까지 마산공고 감독으로 재직하시다 2005년 가을에 전북 수석코치로 선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공석인 경남 감독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86시즌 신인왕은 함현기. 당시 현대에서 FW로 데뷔, 86시즌 35경기 17득점 2도움을 기록합니다. 특히 86프로선수권대회에서만 9득점으로 득점왕까지 거머쥐는 초특급 신인으로 K리그에 입성했었죠. 물론 고려대 시절부터 약관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등 프로 입성 전부터 함현기 선수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었습니다. 박주영 선수랑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저뿐인가요 ? ;;; 함현기 선수는 아쉽게도 2년차 징크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87시즌 29경기 출장 1골 2도움. 함현기씨의 회고에 따르면 87년 당시 국가대표 차출로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소속팀에 쏟을 여력이 없었다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88시즌 현대에 새로 부임한 김호 감독 아래 함현기 선수는 23경기 10골 5도움으로 득점순위 2위, 도움순위 공동 1위에 오르며 부진을 털어내고 다시금 비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89시즌에도 국가대표 차출등의 이유로 13경기 무득점에 그쳤고 90,91시즌에도 예전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자 연봉부담을 느낀 현대는 함현기 선수와 LG의 임재선 선수와 91년시즌 중반에 트레이드 시킵니다. 트레이드 후 LG에서도 팀 전술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던 함현기 선수는 결국 92시즌을 끝으로 K리그 선수 생활을 마칩니다. 폭발적인 신인 시절과 2년차의 부진 3년차의 부활과 씁쓸한 퇴장으로 이어지는 함현기 선수의 여정은 신인왕의 저주(?)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유독 신인왕 수상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함현기 선수는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청산 후 J리그로 날아가 당시 3부리그였던 오이타에 입단 팀을 2년만에 1부리그로 승격시켜놓고 33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후 강릉상고 감독을 거쳐 현재는 묵호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임 중에 있습니다.
87시즌 신인왕 그 이름은 김주성. 당시 김종부 스카우트 파문으로 혼란과 혼탁함으로 얼룩진 프로축구판에 등장한 김주성 선수는 87시즌 FW로 데뷔 28경기 10골 4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87프로축구대회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대우를 우승시키는 대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을 거머줘었는데요. 이후에는 국대차출에 언제나 1순위로 뽑혔기 때문에 K리그에서의 출장기록이 정말 적습니다. 88시즌부터 90시즌까지 27경기 출장 8골 7도움에 그쳤죠. 하지만 이 시기 김주성 선수는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의 반열에 올라섭니다. 89,90,91 3년연속 아시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고요. 91시즌에는 37경기 14골 5도움의 활약 그 뒤 92시즌부터는 분데스리가의 VFB 보쿰에 2년 임대로 해외이적에 성공하는 등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성공가도를 질주했습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죠. 2년동안 30경기 미만 출장에 2골이라는 실망스러운 기록만 남기고 대우로얄즈로 복귀합니다. 국내 복귀 이후부터는 스트라이커에서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했고 99시즌까지 부산과 함께 모든 영광스러운 기록을 함께했습니다. 그야말로 부산의 최고의 레젼드 유일한 영구결번 선수입니다. 현재 축구협회 국제부 부장으로 축구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88시즌 신인왕은 황보관. 유공에서 MF로 데뷔해 데뷔 시즌 23경기 출장 7골 5도움으로 득점순위 4위와 도움 순위 공동 1위에 오르며 신인왕을 차지합니다. 이후 89년부터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로 발탁, 90년 월드컵 본선에서 그 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의 유일한 득점으로 기록된 벼락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황보관 선수의 이름 석자를 사람들에게 확실히 각인 시키게 됩니다. 국대에서도 K리그에서도 캐논슛터로서의 명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보관 선수는 유공에서만 88시즌부터 95시즌까지 꾸준히 출장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94년 정규리그에는 12골 4도움으로 득점순위 3위, 도움순위 3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95시즌을 끝으로 J리그로 이적한 황보관 선수는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2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짓고 수석코치로 발탁, 오이타를 1부리그로 승격시키며 능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 결과 오이타 감독의 사임 후 잠시 감독직을 승계 받기도 했습니다만 성적부진으로 사임했었었죠. 현재는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총괄본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상당히 J리그를 높게 평가하는 축구인사중 한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89시즌 신인왕은 고정운. 당시 막 창단한 일화에 입단한 신인 MF로 31경기 출장 4골 8도움을 기록, 도움순위 2위에 오르며 같은 신인왕 유력 후보였던 최문식 차상해 선수를 따돌리고 신인왕에 등극합니다. 그래도 고정운 선수의 능력이 진정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91시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91시즌 13골로 득점순위 4위, 7도움으로 도움순위 2위를 차지하고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에 공격수 부문에서 선정되며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고정운 선수의 유명세가 수직상승하기 시작했죠. 특히 94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적토마라는 별명을 코흘리개(접니다 ;ㅅ;)도 읊조리게 만들었던. 9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 좌정운 우정원 ㅎㄷㄷㄷ;; 일화에서 오랜 시간을 뛰었는데 제 기억에는 포항 선수로서의 고정운 선수가 더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GS 코치였던 것은 여러모로 에러. 다행히(?) 지금은 브라질 연수에 이어 잉글랜드에서 코치 연수 수업을 받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80년대만 끝마치고 자야겠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대표로 발탁되면 프로리그에서 실종되는게 당연시되었군요. 국가대표 양성소 K리그 전설입니다 ;ㅅ;
# by | 2007/11/26 00:28 | K리그에 관련된건 뭐든지 | 트랙백 | 덧글(2)
이번 기성용 선수건을 바라보며 프로의식에 대한 개념 정립의 시급함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로의식이란게 과연 어떤것인가요? 프로의식의 본질이란게 뭐죠? 돈? 명예? 명성? 그럼 돈많고 명성도 높은 유럽 빅리그 선수들은 죄다 프로의식 만점이고 인도네시아 프리미어리그 뛰는 선수들은 프로의식이 있지도 않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프로의식이란게 그런게 아니죠. 근데도 일부 선수들은 프로의식이 그런 거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프로의식의 본질에 대해서 한 번 사색해봤더니 결론은 이거더군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삶의 현장이 누군가에게는 성지인 이들도 있다. 축구 경기장을 찾는 서포터들, 그들에게 축구장은 단순 여가시설의 하나라는 일반적 의미를 넘어서 자신의 혼을 내맡긴 종교적 열정과 성스러움이 혼재되어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성지라 불리지 못하는 성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있으니 우리는 이들을 축구 선수라 말하며 서포터들이 그들을 향해 노래하고 환호하며 때로는 눈물도 흘리는 모습을 흔히 접한다. 서포터에게서 우리는 그 어떤 사심이나 작위적인 모습따윈 찾아볼 수 없다. 순수한 열정 그리고 끝없는 사랑, 이것은 경건한 종교인들이 신적존재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해 행하는 찬양이나 기도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다시말해 축구선수는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신(神)적인 위치를 필드에 서 있을때만큼은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축구 선수란 자신이 뛰고 있는 필드를 위해 자신을 성원해주는 서포터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해야한다. 이것이 프로의식의 본질이며 이 단순한 명제를 몸소 보여준 선수를 우리는 레젼드라 칭한다.
그렇습니다. 프로의식을 만들어내는 근간 그것은 바로 팬들입니다. 팬이 없으면 그 선수에게 돈은 누가 줄까요? 팬이 없으면 그 선수 플레이 하나하나에 누가 칭찬해주고 입소문을 퍼뜨리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수들이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선수들은 자신이 잘하니깐 그러기에 저렇게 열광하는거겠지 하며 팬들의 성원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신적인 위치를 너무 자주 맛봤더니만 그 눈물나게 달콤한 기쁨을 인식할 정신이 마비된 상태로 뛰고 있습니다.
흔히 그러죠. 초심으로 돌아가라. 이게 딴게 아닙니다. 자신이 프로선수라는 누군가가 그렇게 혼을 내맡기고 사랑하는 팀의 일원이 되어 필드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의 그 기억, 자신하고 안면은 커녕 이제 처음 본 사이인데도 자신이 축구선수라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환호하고 자신의 이름을 하나되어 외쳐주는 그 때 느꼈을 형언할 수 없는 감격 그걸 기억해달라는 겁니다.
스포츠란 선수 혼자 잘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스포츠란 선수와 팬 심판 경기시설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때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인류 유사이래 지금까지 단순한 육체활동이 이토록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뛰는 A매치란 태극전사 11명과 4천만 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함께 뛰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심없이 하나되어 오직 승리를 염원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경기입니다. 민족주의나 쇼비니즘같은 잣대를 떠나서말이죠. 당신의 등뒤에는 4천만 서포터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응원구호는 그렇기에 존재합니다.
왜 우리가 태극전사의 음주파문에 분노하고 치를 떨었겠습니까? 우리가 뭐 그것때문에 금전적 손실을 입었나요? 육체적 피해나 정신적 피해라도 입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죠. 팬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승리를 기원하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비기거나 패한 것까지는 좋습니다. 승부의 세계에선 흔한 일이니까요. 진정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팬들의 신뢰를 저버린 선수들의 프로의식의 부재때문이었습니다. 선수 스스로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무참히 짓밟힌 것에는 팬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로 선수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있는가 그리고 그 위치에서의 책임감이란 무엇인가를 사색해보는 시간을 가져달라고요.
# by | 2007/11/20 10:36 | K리그에 관련된건 뭐든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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