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11일
정성훈 선수가 오늘 꼭 골을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쓰는 국대관련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부산에서 필드플레이어가 국대로 차출된건 노정윤 선수가 잠깐 상비군으로 발탁된거 제외하면 거진 7년만의 일입니다.
(앗 이강진 잠깐 차출됏었지요 ;ㅁ;.. 하루만에 부상당해서 나왔지만 --)
정성훈 김창수 무려 둘씩이나 말이지요. 'ㅂ'b
그렇기에 이 두선수에 대한 감회는 남다르지요. 특히 정성훈 선수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의 화려한 변신, 그리고 비상까지
어느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어요.
그런만큼 저는 정성훈 선수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리그에서도 국대에서도요.
일단 현재까지 국가대표 정성훈에 대한 여론이나 네티즌들의 평은 꽤 긍정적입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 여론의 움직임이란 너무도 의뭉스러워 찬사가 언제 비수가 되어 돌아와 꽂힐지 모르는 일입니다.
특히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는 경우나 수비수가 실책을 범하는 경우 이전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순식간에 역적으로 전락하고 말지요.
이는 언론들이 준동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를 수없이 지켜봐온 어르신들은 정성훈의 현재 모습에 퍽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움직임이 암만 좋아도 골이 없으면 언제든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국대에서 퇴출돼 조용히 은퇴할 수 도 있다고 말입니다.
이와 함께 저에게 들어주신 예시가 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국가대표였던 최광지라는 선수였습니다.
최광지 선수는 61년생으로 85년 당시 광운대에 재학중인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광운대랑 축구를 연관시키면 지금 세대는 설기현!
1세대 전에는 최순호! 가 떠오르곤 하는 특급 공격수를 간간히 배출해내는 그런 학교였습니다.
최광지 선수는 최순호 선수보다 연배로는 1살이 많습니다만 (최순호는 62년생)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득점 행진을 벌이며
차붐 이후 아시아 최대 스트라이커로 등극한 최순호와 최광지의 인기의 차이는 존재의 지평을 달리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박주영-정성훈 인기의 차이보다 몇갑절은 더 했지요.
이런 무명의 최광지 선수를 눈여겨본건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고 문정식 감독이셨습니다. 84년 아시안컵 때부터 최광지를 깜짝 발탁했던
몇경기를 소화하게 하면서 꽤나 애착을 보이셨대요. 최광지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지금의 정조국이나 정성훈의 그것과 흡사했다고 합니다.
타겟이라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최광지 선수를 비롯해 주 득점원이었던 이태호 선수가 1골에 그치며 부진하면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축협이나 언론이나 별 개의칠 않았대요. 아시안컵보다도 이듬해 86월드컵 아시아 예선 통과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으니까요.
거기다 최순호도 빠지고 조광래 정해원도 아시안컵 엔트리에 없어서 떨어진거다. 이들이 돌아오면 더 잘할꺼다. 이렇게 생각했던걸까요?
아무튼 84 아시안컵의 부진에도 당시 연례행사였던 감독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대로 문정식 감독 체제로 85년을 맞이했습니다.
코치로는 김정남씨가 보좌했었지요.
그리고 월드컵 아시아 예선. 여전히 문정식 감독은 조광래 정해원을 중용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여론이 가히 좋지않았을 무렵.
당시 한국의 박빙의 라이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말레이시아와의 어웨이 전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한국, 말레이시아, 네팔이 한 조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네팔 정도는 우리나 말레이시아나 당연히 이긴다 여겼으니
어웨이에서 말레이시아를 최소한 비기고는 돌아와야 아시아 2차 예선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경기였던 겁니다.
근데 이 말레이시아와의 어웨이 선발에 문정식 감독은 바로 이 최광지 선수를 선발로 놓는 깜짝 기용을 보여줍니다.
.....
근데 최광지 선수는 전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채 무득점이었고 동반 출전한 김석원 - 왕선재도 부진해 한국은 골을 넣지 못했고
오히려 말레이시아가 1골 득점. 어웨이에서 0:1로 패배하고 귀국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여론은 문정식 호를 잡아먹을듯한 기세였고
'어떻게 저 중요한 경기에 검증되지도 않은 최광지를 선발로 투입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문정식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경질, 코치였던 김정남씨가 감독으로 승격되었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네팔이 말레이시아와 0:0으로 비겨주며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 말레이시아 네팔을 연거푸 잡은 한국은
겨우겨우 아시아 최종예선까지 오를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86년 월드컵도 본선도 못가고 구경만 할 뻔했었던 거지요.)
이와 동시에 최광지 선수는 국대를 반납하고 여론의 비아냥만 들으며 기억속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최광지 선수는 이듬해 문정식 감독이 재임하던 현대에 입단했지만 20경기 남짓 서브로 교체출장하다 3시즌만에
방출됐더군요. 현재는 울산과학대 여자축구부 감독으로 재임중이십니다.
전 최광지 선수의 얘기를 듣고 딱 떠오른게 고기구 선수였는데 생각해보면 정성훈 선수도 언제 고기구처럼 세인의 비아냥만 들으며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뭇 걱정이 들더군요..
물론 정성훈 선수도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의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대전 시절 김호감독에게 센터백 전향 권유까지
받았었던 정성훈 선수니까요.) 골을 넣어야한다는 부담감에 상당히 초조한 기색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봐도 그렇구요.
하지만 욕심을 낼때는 내야할텐데. 너무 볼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헤딩이나 볼경합에는 과감하지만 슈팅 찬스에서는 머뭇
거리는 모습이 많았어요. 사우디전에는 그나마 덜했지만.. 과감한 돌파와 슈팅능력을 보여줘야 상대팀 수비수들이 더욱
정성훈 선수를 철저히 마크하려 들어 이근호 선수나 박주영 선수에게 공간이 열리는 타겟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아무쪼록 정성훈 선수가 오늘 멋지게 한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부산에서 필드플레이어가 국대로 차출된건 노정윤 선수가 잠깐 상비군으로 발탁된거 제외하면 거진 7년만의 일입니다.
(앗 이강진 잠깐 차출됏었지요 ;ㅁ;.. 하루만에 부상당해서 나왔지만 --)
정성훈 김창수 무려 둘씩이나 말이지요. 'ㅂ'b
그렇기에 이 두선수에 대한 감회는 남다르지요. 특히 정성훈 선수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의 화려한 변신, 그리고 비상까지
어느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어요.
그런만큼 저는 정성훈 선수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리그에서도 국대에서도요.
일단 현재까지 국가대표 정성훈에 대한 여론이나 네티즌들의 평은 꽤 긍정적입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 여론의 움직임이란 너무도 의뭉스러워 찬사가 언제 비수가 되어 돌아와 꽂힐지 모르는 일입니다.
특히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는 경우나 수비수가 실책을 범하는 경우 이전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순식간에 역적으로 전락하고 말지요.
이는 언론들이 준동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를 수없이 지켜봐온 어르신들은 정성훈의 현재 모습에 퍽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움직임이 암만 좋아도 골이 없으면 언제든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국대에서 퇴출돼 조용히 은퇴할 수 도 있다고 말입니다.
이와 함께 저에게 들어주신 예시가 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국가대표였던 최광지라는 선수였습니다.
최광지 선수는 61년생으로 85년 당시 광운대에 재학중인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광운대랑 축구를 연관시키면 지금 세대는 설기현!
1세대 전에는 최순호! 가 떠오르곤 하는 특급 공격수를 간간히 배출해내는 그런 학교였습니다.
최광지 선수는 최순호 선수보다 연배로는 1살이 많습니다만 (최순호는 62년생)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득점 행진을 벌이며
차붐 이후 아시아 최대 스트라이커로 등극한 최순호와 최광지의 인기의 차이는 존재의 지평을 달리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박주영-정성훈 인기의 차이보다 몇갑절은 더 했지요.
이런 무명의 최광지 선수를 눈여겨본건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고 문정식 감독이셨습니다. 84년 아시안컵 때부터 최광지를 깜짝 발탁했던
몇경기를 소화하게 하면서 꽤나 애착을 보이셨대요. 최광지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지금의 정조국이나 정성훈의 그것과 흡사했다고 합니다.
타겟이라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최광지 선수를 비롯해 주 득점원이었던 이태호 선수가 1골에 그치며 부진하면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축협이나 언론이나 별 개의칠 않았대요. 아시안컵보다도 이듬해 86월드컵 아시아 예선 통과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으니까요.
거기다 최순호도 빠지고 조광래 정해원도 아시안컵 엔트리에 없어서 떨어진거다. 이들이 돌아오면 더 잘할꺼다. 이렇게 생각했던걸까요?
아무튼 84 아시안컵의 부진에도 당시 연례행사였던 감독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대로 문정식 감독 체제로 85년을 맞이했습니다.
코치로는 김정남씨가 보좌했었지요.
그리고 월드컵 아시아 예선. 여전히 문정식 감독은 조광래 정해원을 중용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여론이 가히 좋지않았을 무렵.
당시 한국의 박빙의 라이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말레이시아와의 어웨이 전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한국, 말레이시아, 네팔이 한 조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네팔 정도는 우리나 말레이시아나 당연히 이긴다 여겼으니
어웨이에서 말레이시아를 최소한 비기고는 돌아와야 아시아 2차 예선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경기였던 겁니다.
근데 이 말레이시아와의 어웨이 선발에 문정식 감독은 바로 이 최광지 선수를 선발로 놓는 깜짝 기용을 보여줍니다.
.....
근데 최광지 선수는 전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채 무득점이었고 동반 출전한 김석원 - 왕선재도 부진해 한국은 골을 넣지 못했고
오히려 말레이시아가 1골 득점. 어웨이에서 0:1로 패배하고 귀국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여론은 문정식 호를 잡아먹을듯한 기세였고
'어떻게 저 중요한 경기에 검증되지도 않은 최광지를 선발로 투입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문정식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경질, 코치였던 김정남씨가 감독으로 승격되었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네팔이 말레이시아와 0:0으로 비겨주며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 말레이시아 네팔을 연거푸 잡은 한국은
겨우겨우 아시아 최종예선까지 오를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86년 월드컵도 본선도 못가고 구경만 할 뻔했었던 거지요.)
이와 동시에 최광지 선수는 국대를 반납하고 여론의 비아냥만 들으며 기억속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최광지 선수는 이듬해 문정식 감독이 재임하던 현대에 입단했지만 20경기 남짓 서브로 교체출장하다 3시즌만에
방출됐더군요. 현재는 울산과학대 여자축구부 감독으로 재임중이십니다.
전 최광지 선수의 얘기를 듣고 딱 떠오른게 고기구 선수였는데 생각해보면 정성훈 선수도 언제 고기구처럼 세인의 비아냥만 들으며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뭇 걱정이 들더군요..
물론 정성훈 선수도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의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대전 시절 김호감독에게 센터백 전향 권유까지
받았었던 정성훈 선수니까요.) 골을 넣어야한다는 부담감에 상당히 초조한 기색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봐도 그렇구요.
하지만 욕심을 낼때는 내야할텐데. 너무 볼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헤딩이나 볼경합에는 과감하지만 슈팅 찬스에서는 머뭇
거리는 모습이 많았어요. 사우디전에는 그나마 덜했지만.. 과감한 돌파와 슈팅능력을 보여줘야 상대팀 수비수들이 더욱
정성훈 선수를 철저히 마크하려 들어 이근호 선수나 박주영 선수에게 공간이 열리는 타겟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아무쪼록 정성훈 선수가 오늘 멋지게 한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by | 2009/02/11 12:49 | K리그에 관련된건 뭐든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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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에서 정성훈 선수 걱정이 조금 됩니다.
잘 해 주리라 믿습니다.
딱 한번 대회 나가서 우승시켜놨었죠, 그게 지금까지 광운대가 우승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입니다. 한번 특례로 뛰게 해 주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