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과연 몇번이나 꼴찌를 했을까?

혹여 롯데 얘기인가 하고 들어오실 분이 있을까봐 그건 아니고 축구얘기입니다 'ㅂ'b


흠흠

간혹 지금이 로얄즈 시절 포함해서 부산의 최고의 막장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시금 기억해보면 바닥을 맴돌긴 했어도 꼴찌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광주 상무 ㄳ)

그럼 과연 83년 리그원년 참가 이래 26년동안 부산은 몇번이나 꼴찌를 경험했을까요 'ㅅ'?



..

....



....



답은 2번입니다

88년하고 93년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지요. 87년에 우승하고 다음해 바로 꼴찌라니 ;ㅁ;.. (5팀밖에 없었지만..)

거기다 후자의 경우도 91년 우승하고 바로 이듬해 92년 5위로 추락, 93년 꼴찌 *^^*

왜 이랬을까요?

일단 88년 기억이 본인에게 존재하지 않으므로 어른들게 여쭈어보았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88년 올림픽 대표로 대우 선수단 절반 차출 + 드래프트 제도'

ㅇㅇ. 88년 당시 서울올림픽에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본선 진출한 축구대표팀은

88년 봄부터 장장 5개월에 걸친 합숙으로 메달획득을 향한 담금질을 벌이고 있었기에

프로리그에 참가할 핵심 선수들이 프로리그를 전혀 소화할수 없어 각팀들은 신인 선수와 2군 선수로 리그를

돌려야했지요.

(당연히 이는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던 관중몰이에도 직결. 88시즌 평관 1200명이라는 최악의 기록으로

이어졌습니다. 특기할만한건 그런 저조한 관중몰이속에도 유독 포항제철만은 홈경기때마다 1만 5천을 찍었었다는 것..

덕분인지 몰라도 그 해 우승은 포항제철이었지요.)

그리고 올림픽에서 당시 세계최강이었던 소련과 아르헨을 만나 소중한 무도 캐고 그랬지만 본선탈락한 올림픽대표에서

돌아온 스타 플레이어들은 87시즌을 사실상 개점 휴업했었습니다.


당시 대우로얄즈 선수중 올림픽대표로 발탁된 선수는 GK 김풍주, CB 정용환, FB 김판근, FW 정해원 이태호 변병주 김주성

-_-... 베스트 11의 8명을 차출해갔으니 이건 뭐 무링뇨나 웽거 할애비가 온다한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 럭키금성이나 유공 현대 모두 국대 차출당해서 빌빌대긴 매 한가지였고 승점차도 고만고만했기 때문에

멀치감치 앞서나간 포철만 제외하면 대우도 나름 2위까지 할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대우는 막판 3경기를 파파팍 연패하며 돋보적인 11패를 기록하여 리그 꼴찌로 시즌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 연패는 선수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윗선의 지시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네요 ㅇㅇ

이유인즉슨 리그 최하위팀에게 드래프트 우선권이 돌아가는 당시 드래프트 제도 규정을 이용하려는 노림수였던거라나요

당시 89년 드래프트 대상자에는

저 유명한 고정운이 있었고 유대순, 최문식 (당시 정말 드물었던 고졸 신인이었지), 임종식등 알짜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이들을 야금야금 챙기려는 (무엇보다도 1순위 타겟은 고정운이었겠죠) 대우의 꿈은

....

88 시즌이 끝나고 제 6구단 일화가 창단되면서 좌절되고 말았더랬습니다 ;ㅁ;...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은 일화에 돌아갔고 당연하게도 고정운은 일화에 입단합니다 ㅇㅇ

졸지에 닭쫒던 개 신세가 된 대우는 그래도 꿩대신 닭이라고 고정운 다음으로

당시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잘나갔던 한양대의 심봉섭과 노경환을 지명하지요.

100m 11초대의 준족에 깔끔한 플레이가 돋보였던 심봉섭이었다지만 리그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는 기대를 모았던 CF 노경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우 입장에서는 정해원 이태호의 공백을 메워줄 파괴력과 득점 감각을 겸비한 대형 스트라이커로의 성장을 노경환 선수에게

바랬지만 노경환 선수는 오늘날로 치면 고기구나 정성훈 'ㅅ'? 정도의 당시 K리그 판으로 비유하자면 송주석 내지 차상해? 정도

의 역할을 해주는 선수였습니다. 골게터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지요.


결국 두 선수 다 신인으로 들어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대우의 91시즌 우승당시에는 조커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뒤에 말할

93시즌 꼴찌때도 팀의 추락을 막아내지 못했구요.

결국 심봉섭 노경환 두 선수 모두 95시즌 즈음에 K리그 100경기 남짓뛰고 은퇴했고 현재는 노경환 씨는 대전 코치로

뛰고 계시고 -~- 심봉섭 씨는 고등학교 감독하신다 합니다. 첨언으로 현 부산아이팤 선수인 정홍연 선수의 은사님이

바로 심봉섭 씨라나요


그리고 이제 93시즌 꼴찌 경위를 살펴보면..

음.. - 뭐 이땐 간단합니다

84, 87, 91 3회 우승의 황금기를 일궈냈던 골든 제너레이션이 91 혹은 92시즌을 끝으로 줄줄이 은퇴했지요.

이태호 정해원 변병주 정용환 수비와 공격의 양핵이었던 선수들의 대거 은퇴와 철벽 수문장 김풍주의 부상

거기에 최고의 스타였던 김주성의 독일 진출 ;ㅁ;..

최연소 A매치의 주인공으로 그 플레이가 지금의 오범석과 유사했던 김판근 선수 홀로 막아내기엔 전력 누수가

87년의 그것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거기다 감독 또한 유학길에 올랐다 돌아온 이차만 감독이 성적부진과 프론트와의 불화를

사유로 시즌중 경질되고 이제 막 코치로 자리를 잡고 있던 조광래가 감독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했습니다.

신출내기 감독과 빈약한 선수진으로 93년과 94년 95년까지 대우는 정말 암울했지요.

신인들도 기대만큼 활약해주질 못했구요. 이경춘 김정혁 정재권.. (그나마 정재권은 90년대 후반 빛을 발합니다만 당시 신인 시절만

해도 스피드만 있었으나 볼키핑과 같은 섬세한 면에서 자주 서정원과 비교당하곤 했습니다.)

94년에는 신생구단 전북다이노스가 꼴찌를 해준덕에 간신히 꼴찌를 면했지만 이 시절도 암울하긴 매 한가지였습니다..;

어찌보면 지금보다 더 했지요. 지금이야 저같은 고정팬들이라도 있는데 90년대 중반 무렵 부산에서 로얄즈 인기는

롯데의 그것과 게임이 되질 않았어요. (물론 김주성이 복귀하면서 이 모든걸 한큐에 해결했지만..;)


어쨋든 93시즌 정규리그 꼴찌를 기록합니다 .. 10승 20패 22득 32실점 경기당 1골도 못넣는 최약의 공격력과

실점이 합작한 결과물이었지요.. --.



 

by 사냥꾼이너무많다 | 2009/02/10 15:02 | K리그에 관련된건 뭐든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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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푸른별빛 at 2009/02/10 18:22
생각보다 꼴지 경험은 없네요...라고 하면 부산팬분들에게 욕먹겠죠;; 제 기억 속에 부산은 반짝 -> 침체의 사이클의 순환이라서;;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9/02/10 18:42
89때 최문식은 이미 포항으로 갈 운명이었습니다. 당시 이회택 감독이 최문식 뿐 아니라 전경준 같은 선수들(또 한명이 기억이 안납니다만 이때 고졸트리오가 대단한 태크니션들이었지요)을 물밑에서 이미 작업 완료 한 뒤라서 말이죠.
(그러고보니 이회택 감독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시한번 재삼재사 생각해도 신인 발굴에는 도가 튼 분입니다.)

심봉섭의 경우도 대우가 이후를 기대한 카드였고 대학시절 저도 기대하던(솔직히 고정운에 비해 제가 더 높게 치기도 했던 선수였습니다 ^^)선수였는데 성장하지 못해 참 암울했죠.

그리고 김정혁 카드를 생각 안할순 없겠습니다.
김정혁 한명을 데려오기 위해 일화하고 했던 3:1 트레이드는 그야말로 대실패. 그때 일화가 가져간 선수가 신태용-한정국-박남렬 라인이지요. 이 실패도 엄청 컸습니다. 솔직히 김정혁 선수의 대학시절 플레이를 본다면 김주성 저리가라 할 선수였으니까요. 하여간 90년대 초에는 김주성 복귀 전까진 정말 빈공에 수비력 빵꾸가 결정적이었지요.

그때의 일화가 하나 더 있는데 어느날은 안정복 단장이 열받아서 자기가 감독역할까지 다 하고 선수구성 및 교체까지 지시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는데 결과가 썩 좋지 않았었었던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 콩가루가 된 상황이었죠. 그때를 생각한다면 요즘 부산의 행보는 '그것보단 낫지 뭐' 할만 하긴 합니다만...

솔직히 K-리그의 전통 명문에 가장 근접했다 볼수 있는 팀은 포항과 부산 정도로 생각합니다만(아직 한국 프로축구나 야구에선 '명문'소리 할만한 팀은 없다고 봅니다. 아직 역사가 한세대가 덜 지났습니다.) 그 두팀의 행보가 아주 그냥 쌍으로 같이 엇박으로 가는데엔 참 아쉬윌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사냥꾼이너무많다 at 2009/02/12 09:13
상당히 아쉽습니다만.. 뭐 계속 지켜봐야겠지요. 무엇이든 다 그렇지만 발전의 매커니즘은 유기체와 같아서 전진과 퇴보의 연속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곧 좋은 소식이 올 것 이라 생각합니다. 그 믿음과 기대때문에 지금껏 부산을 응원하는거니까요 ^^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9/02/12 18:40
그 믿음이 있어야 팬이죠, 안그러면 그냥...반짝에 편승하는 것에 불과한거죠...

그러다보니 이놈의 부천에 대한 애증이란...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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