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이장관 선수에 대한 기억

2002년 월드컵 직후 열렸던 K리그 개막전 부산VS울산 경기. 당시 월드컵 특수로 구덕구장에는 기존 부산 팬보다는 월드컵 스타들을 가까이서 보고싶다는 일념하에 온 관중들이 엄청 많았다.(찾아보니 관중 집계 39427명이다.) 거기서 나는 꽤나 잔인한 광경을 목격한다.

당시 부산은 김용대, 이규호, 장대일, 김창오, 송종국으로 구성된 연세대 라인과 기존의 부산대우로얄즈 때부터 주축이었던 아주대 라인(정유석, 이정효, 김재영, 이장관, 이기부, 이민성)이 불협화음을 내며 불안불안한 경기력을 선보이던 시기였다. 안 그래도 김호곤 감독은 연대 감독 재임시절 김용대, 이규호, 김창오 선수와 사제지간으로 맺어진 전력이 있고 거기다 모두 김호곤 감독 부임 이후 영입해온 선수들이었기에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모양새로 인해 부산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는등 여러모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개막전은 김호곤 감독 특유의 고집이 드러나는 포메이션이 인상 깊었다. 때마침(?) 아주대 라인의 멤버들이 줄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긴 했지만 김호곤 감독은 김용대, 이규호를 선발 출장시키는 파격적인 포메이션을 선보인다.

특히 김용대 선발출장은 꽤나 충격이었다. 이때만해도 월드컵 개막 전에 열렸던 02시즌 아디다스컵에서 데뷔전을 치른 김용대 선수는 그 경기에서 4실점을 하며 팬들에게 혹평을 받은게 전부였던 풋내기 골리에 불과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김용대 선수에 대한 평가는 정유석이 부상당했을 때나 쓸법한 넘버 2골리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개막전 선발 출장을 꿰차 기억에 남는다. 좀 더 박하게 말하면 김호곤 빽으로 개막전 선발출장의 영예를 얻었다고 입방아가 심했다.

거기에 이규호 선수는 02시즌 입단한 신인(김용대는 01시즌 입단)선수로 김학철이나 이민성을 제치고 바로 주전을 꿰찰만큼 대단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날 경기기록부를 찾아보니 대기명단에 김학철이 포함돼 있던걸로 보아 이규호를 굳이 개막전 선발로 내세웠어야 했었나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여하튼 당시 이규호 개막전 선발은 꽤나 쇼킹한 일로 '이규호가 누고? 우리 선수가?' 하는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_-

어찌되었든 그런 불안감을 안고 경기시작. 이장관 선수는 오른쪽 미들로 선발 출장. 그때나 지금이나 멈출줄 모르는 활동량과 기동력으로 사이드풀백과 미들을 번갈아 오가며 부산 플레이어 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왼쪽의 우르모브도 또한 마찬가지로 꾸준한 플레이를 보여줬고. 이 두 선수의 발끝에서 시작하는 부산의 공격은 꽤나 매서웠다. 다만 스트라이커로 나온 우성용과 마니치가 마무리를 못내고 버벅거려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런데 전반이 아직 몇분 남았을 무렵 송종국이 교체 준비를 하는 모습이 잡혔다. 관중들은 술렁술렁. 여학생들은 이미 환호성 모드 -_-;; 설마 벌써 교체할라구? 감독의 생각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물론 수비의 보강이 필요하긴 했다. 자꾸 볼경합에서 맥없이 부산 수비수들이 밀리는게 불안했기 때문. 다행이 울산 선수들이 볼경합에서 파울을 계속 저질러 위기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절한 조율을 해줄 김재영이나 이용하 선수의 투입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수비는 둘째 치더라도 골킵 김용대 선수가 워낙 비실거리는게 불안해서 정유석이 빨리 나와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요새들어 K리그 보는 사람들은 내 말이 많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정유석이 신범철의 뒤를 이어 향후 몇년간 부산의 골문을 든든히 지켜줄 줄로만 알았다. 그때의 정유석과 김용대의 위상차이가 지금은 제대로 역전되긴 했으니 이런걸 상전벽해라고 하는 것일까... 지금은 정유석에게서 당시의 김용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게 참 신기하면서도 아이러니다. -_-

송종국과 교체 아웃된 선수는 다름아닌 이장관 선수였다. 소수의 몇몇 부산팬들은 김호곤 감독의 의중을 알 수 없다며 혀를 찼고 대다수의 구덕을 메운 관중들 특히 여학생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런 모습에 압도 당했다. 송종국은 부산의 축구 선수중 한명이 아니라 부산을 대표하는 아이돌 스타처럼 되버린 것 같았다.

'저들은 부산의 경기를 보러온것인가? 송종국을 보러 온 것인가?'

이런 생각에 씁쓸함에 뒤이어 짜증이 솟구치고 맘속 깊이 분노하고 경멸했다. 그때부터였나. 부산에 관중이 없다고 까이던 시절에도. 대구와 광주같은 신생구단이랑 사이좋게 꼴찌 경쟁을 하던 시절에도 아무말없이 지치지도않고 순수하게 부산이 좋아서 응원할 수 있게된 계기가 그 경기부터였던 것 같다. '난 축구가 좋아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산이 좋아서 부산 경기 보러간다. 이 십탱구리들아!' 라고 맘속으로 외치며 아직까지 부산을 응원하게 만들어줬으니 송종국을 연호하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할지도 모르겠다 -_-

그리고 또 하나. 이장관 선수의 초라한 교체아웃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 송종국이 그라운드에 나서자 정신없이 열광하며 월드컵의 기억을 되새김질 할 뿐 아무도 그라운드를 떠나는 이장관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는 이가 없었다. 자기가 아닌 누군가를 향한 환호성에 묻혀 정의의 사도에게 패한 악의 화신처럼 초라하게 물러나야했던 이장관 선수의 맘은 어떠했을까? 뒤이어 그들은 이장관 선수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에는 조용하더니 송종국 선수가 울산 선수에게 맥없이 무너지는것에는 분노하고 욕을 퍼부어댔다. 이 두 에피소드는 너무도 잔혹한 광경이었고 이장관 선수를 추억할 때 심연에서 떠오르는 트라우마와도 같은 기억이다. 그리고 덧붙여 송종국 선수를 오늘날까지도 별로 안 좋아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버렸다. -_-

결국 이장관 선수가 교체 아웃되고서 불안했던 부산 골키퍼와 수비진의 합작품으로 박진섭 선수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전반이 다 끝나갈 무렵 실점을 허용한다. 결국 하프타임때 이용하 선수가 들어오며 분위기를 추스려보지만 오히려 후반 시작하기 무섭게 이제는 추억의 외국인 선수가 되버린 울산의 파울링뇨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0:2로 끌려가다 나중에 우성용이 PK로 간신히 1골 만회하는데 그치며 결국 부산은 1:2 패배를 당했다. 송종국 선수는 스폿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그 경기에서 울산의 이천수는 출장하지 않았기에 월드컵이 낳은 스타는 양팀 통틀어 송종국 뿐이었다.) 별 활약도 못보여주고 경기를 끝마쳤다.

관중들은 송종국이 볼 잡을때나 넘어질때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다 경기 끝나고 나서 '에이 재미없어'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뭐 김호곤 감독 아래 부산 축구가 재미는 없고 포터할배만큼이나 답답만 했으니 할 말은 없다 -_- 그래도 이들이 지금 아시아드 경기장에 부산팬을 자처하며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들은 축구를 즐길 줄 모르며 즐길 자격도 없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이장관 선수는 부산에서 화려하게 조명 받기는 커녕 매번 빛에 가리우는 어둠처럼 머무르며 상처만 받아왔다. 하지만 이장관 선수는 그런 기억 쯤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애써 외면사며 몇년째 부산을 위해 뛰며 맏형 노릇을 해주고 있다. 부산에서 정말 사랑받았던 모모 선수는 어디선가 돈 생각이나 하고 앉아있겠지만 이장관 선수는 언제나 뒤돌아보면 그 자리 부산의 오른쪽에 서있다. 그래서 정말 눈물나게 고맙고 진정한 부산 싸나이라고 말해줘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장관 선수는 서울 출신이다. -_-) 

by 사냥꾼이너무많다 | 2008/01/15 13:34 | 부산's 레젼드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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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까와 at 2008/01/15 20:54
그때 송종국이 나올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 중 한명이 저였죠. 월드컵 전에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라 송종국 등 2002스타에게 열광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거같아요. 리그팬과 국대팬의 시각차.. 경기내용과 선수 중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가 그 둘을 가르는 지표가 되겠죠.. 저도 가끔 그런 기분이 든 적이 있었어요. 가령 부산-수원전에 아시아드에 몰린 사람들을 보며 '경기를 보러오는게 아니라 안정환 백지훈을 보러오는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경기장을 찾니 난 너희와 달라 난 꾸준히 경기장을 찾는다구'라는 생각이 들던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특권의식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썩 좋은 건 아니더라구요. 물론 그때 제가 리그팬의 입장이었다면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을듯.. 그렇게 그렇게 갈 사람은 가고 관심있는 사람은 리그팬이 되는거겠죠. 요즘들어서 점점 뭐랄까 귀차니즘같은건 아닌데.. 좋은게 좋은거라는 생각? 흘러가는대로 지켜보자.. 방관자적 시각이 끌리는중.. 원래부터 열혈 지지자도 아닌것도 있지만요. 김판곤 수코랑 사이안좋아서 개인훈련중이라는데 꼭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장관햄
Commented at 2008/01/16 21: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덴디 at 2008/01/19 19:46
제가 그래서 레플마다 전부 장관옹 마킹만 박습니다(...)저도 오지게 송종국 싫어하는데 원래는 빠였던걸 생각하니...허어.
Commented by 사촌동생 at 2008/02/10 23:20
장관이형 청주 출신으로 알고 있어요. 참고로 전 사촌동생..ㅋ
Commented by 사냥꾼이너무많다 at 2008/02/15 20:25
오 이장관 선수의 사촌동생 ;ㅁ; 반갑습니다. 이장관 선수 ㅜㅜㅜㅜㅜ 지금 인천에서 입단테스트 뛰고 계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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