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02일
97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대한민국 청대 3:10을 기억하십니까?
저번 93년 청대명단에 이어 이번엔 97년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대한민국 U21 명단에 대해 끄적거려보겠다.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97년 세대는 당시에는 매스컴에서 별 오도방정을 다떨며 '역대 최강 (하기사 얘네는 맨날 역대최강이라고 하지만 ㅡㅡ;) 한국 청대 이번엔 세계 레벨의 팀과 해볼만 하다!' '세계 4강(멕시코 청소년대회)의 신화를 다시 한번 써보자!' 라고 바람잡이를 하더니 조 추첨에서 남아공, 프랑스, 브라질의 극강의 강팀들 사이에 낑겨 놓고도 '남아공은 약하다! 프랑스? 별거 아니다. 브라질? 이기지 못할 팀은 결코 아니다!' 이랬던 기억이 난다. 특히 96년 아시안컵에서 2:6 이란 알리 다에이 원맨쇼 대참사를 겪은 직후의 국제 대회였는지라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국대는 당분간 가망 없으니 파릇파릇한 새싹인 청대라도 잘 키워보자고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더랬다.
확실히 언론들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역대 최강 청대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오도방정을 떨었을터, 그 믿는 구석이란 당연히 이관우의 존재 때문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재학 선수로 청대에서 에이스 오브 에이스의 자리에 등극 차세대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자타의 기대를 받던 천재, 동년배인 금호고의 고종수와 더불어 고등학교 축구계를 평정한 한양공고의 이.관.우 그 이름 석자의 의미는 당시 박종환 감독 욕하느라 정신없던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세계 청소년 대회 예선격인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대회 MVP와 우승컵을 동시에 석권하고 포부도 당당히 돌아온 이관우의 인기는 2004년 박주영 신드롬과 비교했을 때 몇 갑절은 더 강력했으면 했지 결코 모자라진 않았다. 참고로 당시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우승은 6년만의 쾌거였으며 95년 청대는 아예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탈락으로 세계 청소년 대회에 참가조차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시아 팀쯤은 3류 듣보잡으로 깔아뭉개고 들어가는 요새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당시 청대 감독은 지금의 인천 유나이티드 총감독인 박이천 씨, 박이천 감독도 이관우 선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급기야는 유일무이한 이관우의 라이벌인 고종수 선수를 '팀 전술에 안 맞는다, 감독 말 안 듣는다'고 청대 엔트리에서 제외시키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고종수 선수는 오히려 당시 98 월드컵 예선 준비에 바쁜 차범근 감독의 호출로 청대는 탈락하고 국대에 입성하는 기묘한 기록을 남겼다.
드디어 97년 6월 말레이시아에서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가 열렸다. 첫번째 상대는 남아공. 당시 아프리카 팀은 한국언론에게는 1승추가를 위한 손쉬운 제물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었고 (실제로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국가대표 A매치에서 아프리카 국대를 상대로 승률이 상당히 높다. 물론 홈 어드밴테이지의 어마어마함을 간과해선 안된다.) 경기내용 자체도 한국팀의 압도적인 우세였다는 증언이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나한테야 골도 안들어가는 시시한 경기였을 뿐이었지만(..) 그러다 후반 30여분 즈음 이관우 선수가 결정적 찬스(찾아보니 공격 3 VS 수비 1이었다..;;)를 달려가는 선수에게 패스 안해주고 혼자 똥볼로 날려먹으면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2002년 독일전 이천수 선수가 오버랩 되는건 왜일까 ..;; 결국 0:0 경기종료. 암만 압도적 경기내용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록만 남는다.
언론은 물론 아쉬운 무승부, 다 잡은 승기를 놓친 대한민국 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다가오는 대 프랑스전 분석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분석이라고 해봐야 프랑스를 이기지 못하면 조별 예선 탈락이 확실시 된다는 결론밖에 안 나왔지만 (..)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 청대에 그야말로 앙팡 테리블이 그것도 둘씩이나 있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이름은 앙리와 트레제게 ........... 답이 안 나온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건 나뿐이 아니리라 믿는다. 물론 당시 앙리는 지금처럼 센터포워드가 아니라 처진 윙포워드에 가까웠지만 포지션이 다르다고 그 포스가 어디가겠나.. 대학살의 예견을 지금의 우리야 당연히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앙리나 트레제게나 모두 프랑스의 뽈좀 차는 소년에 불과했다. 물론 경기 시작 전까지만..
드디어 경기 시작. 그야말로 한국 수비진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한국 미들진은 이관우 하나만으로도 미칠듯한 포스를 뿜어댔지만 수비진과 공격진은 미들진을 뒷받침 해줄 중량감이 너무도 떨어졌다. 당시 한국 청대 수비진은 조세권, 한종성, 박준홍, 심재원, 박진섭, 남기성, 김만중 정도다. 이 중에 박진섭, 심재원 빼고 아는 사람 있으면 손~?(;;;) FM에서 K리그 마니아나 K리그를 몇년째 관전한 이들 정도 돼도 이들의 이름을 다 꽤차고 있는 사람은 없을듯하다. 참고로 얘기하면 2007년 현재 위의 7인중 K리그에 뛰는 선수는 조세권 (울산) 심재원 (부산) 박진섭 (성남) 뿐이고 한종성 박준홍 김만중 선수는 모두 자유계약 방출 뒤 은퇴 김만중 씨는 현재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코치로 활동중이며 남기성 선수는 3시즌째 내셔널리그 수원시청에서 활약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들에게 앙리나 트레제게를 막으라는건 계란투석이었다. 앙리의 미칠듯한 드리블 돌파에 한국 수비진들은 뚫리다 못해 앙리의 뒷꽁무니를 쫒는것도 주력이 딸려 (볼 잡은 선수를 상대로 달리기 속도가 뒤졌다는 말이다 OTL..) 나가떨어졌고 그걸 중계방송으로 지켜봐야했던 한국 축구팬들은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해설진들이 앙리는 세계적 선수가 될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한국 수비진들에게 위로아닌 위로를 보냈고 그 호언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프랑스의 일방적 공세앞에 4골밖에 안 먹은걸 위안으로 삼아야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황금 미들진은 뭘 했을까?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분명 이관우 선수를 필두로 분전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미들진이나 공격진중 프랑스를 상대로 골문을 연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 수비진에서 그것도 2골이나 만회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것도 한 명의 한국 수비수가 말이다. 대 프랑스전 대한민국의 영패를 모면하며 그 이름을 빛냈으니 그 선수가 바로 박진섭 선수다. 박진섭 선수의 숨겨두었던 공격본능은 훗날 2003년에 다시 대오각성하게 되는데 뭇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대한민국 A매치 최다골 16:0의 기록을 세운 네팔전이 그것이다. 박진섭 선수는 이 경기에서 혼자 5골을 넣으며 당시 코엘류 감독이 새로운 공격자원을 찾았다! 라는 감탄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 박진섭 선수는 국대와 인연이 멀어졌고 코엘류도 경질되었으니 (..) 그리고 덧붙여 네팔전은 이관우 선수의 A매치 첫번째골이 작성된 경기이기도 했다. 6년의 간극을 두고 이어진 축구의 인연이란 기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론는 어쨋든 2:4 패배. 이제 언론은 대한민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는 수비! 세계의 벽은 역시 높았다! (이들의 제목짓는 센스의 한계 또한 고질적인 문제로 보인다..ㅡㅡ;)라는 타이틀로 청대의 조별예선 통과 사실상 불가능함을 보도했고 한편에서는 브라질 전에서의 대한민국 청대의 분투를 기대하는 기사도 실렸다. 불운하게도 당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자신들이 안드로메다 관광 티켓에 당첨되었음을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마지막 브라질과의 경기. 이 경기에서 한국 축구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 역대 한게임 최다골(13골), 한팀 한게임 최다골(10골), 개인 한게임 최다골(6골,ADAILTON)이 이 경기에서 작성되었다. 중계진과 한국 축구팬들은 문득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고 소처럼 웃었다 한다(...) 의외로 당시 해외 언론은 브라질의 10골보다는 대한민국이 3골을 넣었단 사실에 더 감동했다는 후문도 들리나 안드로메다 관광 스코어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당시 박이천 감독 이하 선수단은 한국땅을 밟을 수 없을것이라는 예언을 남겼고 선수단 전원이 말레이시아 국적 취득 추진중이라는 우스개도 들렸다. 다행히도 16강전에서 벨기에가 브라질에게 10:0으로 우주 끝 저너머로 관광간 덕분(?)에 무려 3골이나 넣은 대한민국 선수단은 무사히 귀국길에 오를수 있었다.
아무튼 97 세계 청소년 대회 대한민국 청대는 대한민국 축구의 골짜기 세대로 통했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신기한건 당시 그렇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축구를 보여줬던 브라질 청대가 아르헨티나 청대에게 2:0으로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당시 97 브라질 청대 중 오늘날 성공한 선수가 첼시의 ALEX 한 명뿐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6골을 퍼부으며 득점왕에 오른 ADAILTON은 현재 세리에 B를 전전한다하고 수비수였던 VINICIUS는 작년 K리그 울산에서 뛴 그 비니시우스 선수다 (..) 혹자는 97 브라질 청대의 화려한 비상과 초라한 오늘날을 빗대어 단군의 저주(?)라고 칭하나 믿을바는 못된다. 오히려 단군의 저주는 97 대한민국 청대가 제대로 받은것 같다.
마지막으로 97 대한민국 청대 명단과 현재상황. 이들중 현 국대 소속은 단 한명도 없다. 말 그대로 골짜기 세대 (..)
확실히 언론들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역대 최강 청대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오도방정을 떨었을터, 그 믿는 구석이란 당연히 이관우의 존재 때문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재학 선수로 청대에서 에이스 오브 에이스의 자리에 등극 차세대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자타의 기대를 받던 천재, 동년배인 금호고의 고종수와 더불어 고등학교 축구계를 평정한 한양공고의 이.관.우 그 이름 석자의 의미는 당시 박종환 감독 욕하느라 정신없던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세계 청소년 대회 예선격인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대회 MVP와 우승컵을 동시에 석권하고 포부도 당당히 돌아온 이관우의 인기는 2004년 박주영 신드롬과 비교했을 때 몇 갑절은 더 강력했으면 했지 결코 모자라진 않았다. 참고로 당시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우승은 6년만의 쾌거였으며 95년 청대는 아예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탈락으로 세계 청소년 대회에 참가조차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시아 팀쯤은 3류 듣보잡으로 깔아뭉개고 들어가는 요새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당시 청대 감독은 지금의 인천 유나이티드 총감독인 박이천 씨, 박이천 감독도 이관우 선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급기야는 유일무이한 이관우의 라이벌인 고종수 선수를 '팀 전술에 안 맞는다, 감독 말 안 듣는다'고 청대 엔트리에서 제외시키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고종수 선수는 오히려 당시 98 월드컵 예선 준비에 바쁜 차범근 감독의 호출로 청대는 탈락하고 국대에 입성하는 기묘한 기록을 남겼다.
드디어 97년 6월 말레이시아에서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가 열렸다. 첫번째 상대는 남아공. 당시 아프리카 팀은 한국언론에게는 1승추가를 위한 손쉬운 제물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었고 (실제로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국가대표 A매치에서 아프리카 국대를 상대로 승률이 상당히 높다. 물론 홈 어드밴테이지의 어마어마함을 간과해선 안된다.) 경기내용 자체도 한국팀의 압도적인 우세였다는 증언이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나한테야 골도 안들어가는 시시한 경기였을 뿐이었지만(..) 그러다 후반 30여분 즈음 이관우 선수가 결정적 찬스(찾아보니 공격 3 VS 수비 1이었다..;;)를 달려가는 선수에게 패스 안해주고 혼자 똥볼로 날려먹으면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2002년 독일전 이천수 선수가 오버랩 되는건 왜일까 ..;; 결국 0:0 경기종료. 암만 압도적 경기내용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록만 남는다.
언론은 물론 아쉬운 무승부, 다 잡은 승기를 놓친 대한민국 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다가오는 대 프랑스전 분석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분석이라고 해봐야 프랑스를 이기지 못하면 조별 예선 탈락이 확실시 된다는 결론밖에 안 나왔지만 (..)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 청대에 그야말로 앙팡 테리블이 그것도 둘씩이나 있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이름은 앙리와 트레제게 ........... 답이 안 나온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건 나뿐이 아니리라 믿는다. 물론 당시 앙리는 지금처럼 센터포워드가 아니라 처진 윙포워드에 가까웠지만 포지션이 다르다고 그 포스가 어디가겠나.. 대학살의 예견을 지금의 우리야 당연히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앙리나 트레제게나 모두 프랑스의 뽈좀 차는 소년에 불과했다. 물론 경기 시작 전까지만..
드디어 경기 시작. 그야말로 한국 수비진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한국 미들진은 이관우 하나만으로도 미칠듯한 포스를 뿜어댔지만 수비진과 공격진은 미들진을 뒷받침 해줄 중량감이 너무도 떨어졌다. 당시 한국 청대 수비진은 조세권, 한종성, 박준홍, 심재원, 박진섭, 남기성, 김만중 정도다. 이 중에 박진섭, 심재원 빼고 아는 사람 있으면 손~?(;;;) FM에서 K리그 마니아나 K리그를 몇년째 관전한 이들 정도 돼도 이들의 이름을 다 꽤차고 있는 사람은 없을듯하다. 참고로 얘기하면 2007년 현재 위의 7인중 K리그에 뛰는 선수는 조세권 (울산) 심재원 (부산) 박진섭 (성남) 뿐이고 한종성 박준홍 김만중 선수는 모두 자유계약 방출 뒤 은퇴 김만중 씨는 현재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코치로 활동중이며 남기성 선수는 3시즌째 내셔널리그 수원시청에서 활약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들에게 앙리나 트레제게를 막으라는건 계란투석이었다. 앙리의 미칠듯한 드리블 돌파에 한국 수비진들은 뚫리다 못해 앙리의 뒷꽁무니를 쫒는것도 주력이 딸려 (볼 잡은 선수를 상대로 달리기 속도가 뒤졌다는 말이다 OTL..) 나가떨어졌고 그걸 중계방송으로 지켜봐야했던 한국 축구팬들은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해설진들이 앙리는 세계적 선수가 될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한국 수비진들에게 위로아닌 위로를 보냈고 그 호언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프랑스의 일방적 공세앞에 4골밖에 안 먹은걸 위안으로 삼아야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황금 미들진은 뭘 했을까?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분명 이관우 선수를 필두로 분전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미들진이나 공격진중 프랑스를 상대로 골문을 연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 수비진에서 그것도 2골이나 만회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것도 한 명의 한국 수비수가 말이다. 대 프랑스전 대한민국의 영패를 모면하며 그 이름을 빛냈으니 그 선수가 바로 박진섭 선수다. 박진섭 선수의 숨겨두었던 공격본능은 훗날 2003년에 다시 대오각성하게 되는데 뭇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대한민국 A매치 최다골 16:0의 기록을 세운 네팔전이 그것이다. 박진섭 선수는 이 경기에서 혼자 5골을 넣으며 당시 코엘류 감독이 새로운 공격자원을 찾았다! 라는 감탄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 박진섭 선수는 국대와 인연이 멀어졌고 코엘류도 경질되었으니 (..) 그리고 덧붙여 네팔전은 이관우 선수의 A매치 첫번째골이 작성된 경기이기도 했다. 6년의 간극을 두고 이어진 축구의 인연이란 기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론는 어쨋든 2:4 패배. 이제 언론은 대한민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는 수비! 세계의 벽은 역시 높았다! (이들의 제목짓는 센스의 한계 또한 고질적인 문제로 보인다..ㅡㅡ;)라는 타이틀로 청대의 조별예선 통과 사실상 불가능함을 보도했고 한편에서는 브라질 전에서의 대한민국 청대의 분투를 기대하는 기사도 실렸다. 불운하게도 당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자신들이 안드로메다 관광 티켓에 당첨되었음을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마지막 브라질과의 경기. 이 경기에서 한국 축구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 역대 한게임 최다골(13골), 한팀 한게임 최다골(10골), 개인 한게임 최다골(6골,ADAILTON)이 이 경기에서 작성되었다. 중계진과 한국 축구팬들은 문득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고 소처럼 웃었다 한다(...) 의외로 당시 해외 언론은 브라질의 10골보다는 대한민국이 3골을 넣었단 사실에 더 감동했다는 후문도 들리나 안드로메다 관광 스코어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당시 박이천 감독 이하 선수단은 한국땅을 밟을 수 없을것이라는 예언을 남겼고 선수단 전원이 말레이시아 국적 취득 추진중이라는 우스개도 들렸다. 다행히도 16강전에서 벨기에가 브라질에게 10:0으로 우주 끝 저너머로 관광간 덕분(?)에 무려 3골이나 넣은 대한민국 선수단은 무사히 귀국길에 오를수 있었다.
아무튼 97 세계 청소년 대회 대한민국 청대는 대한민국 축구의 골짜기 세대로 통했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신기한건 당시 그렇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축구를 보여줬던 브라질 청대가 아르헨티나 청대에게 2:0으로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당시 97 브라질 청대 중 오늘날 성공한 선수가 첼시의 ALEX 한 명뿐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6골을 퍼부으며 득점왕에 오른 ADAILTON은 현재 세리에 B를 전전한다하고 수비수였던 VINICIUS는 작년 K리그 울산에서 뛴 그 비니시우스 선수다 (..) 혹자는 97 브라질 청대의 화려한 비상과 초라한 오늘날을 빗대어 단군의 저주(?)라고 칭하나 믿을바는 못된다. 오히려 단군의 저주는 97 대한민국 청대가 제대로 받은것 같다.
마지막으로 97 대한민국 청대 명단과 현재상황. 이들중 현 국대 소속은 단 한명도 없다. 말 그대로 골짜기 세대 (..)
| GK | 정유석(부산), 최현(제주) | |||
| Field player | 조세권(울산), 한종성(은퇴), 박준홍(부산->부산교통공사), 심재원(부산), 박진섭(성남), 문변모(은퇴), 남기성(수원시청), 김만중(은퇴), 김도균(은퇴), 이정민(은퇴), 서기복(인천), 이관우(수원), 안효연(수원), 박병주(수원시청), 양현정(베트남리그소속...), 정석근(은퇴) | |||
# by | 2007/11/02 20:46 | K리그에 관련된건 뭐든지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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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게 저 당시 정유석에게 가려서 선발조차 안되었던 선수가 김용대입니다. 저때만 하더라도 정유석에게 상대도 안됬어요.
그리고 저 청대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게 아시아 예선(그러니까 아시아 청소년대회)가 당시 한국에서 열렸는데 그 4강전을 본 사람들은 다 입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야말로 정유석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일본애들이 그 경기 가지고 논 경기였는데 심지어 1:1도 아니고 2:1 상황의 노마크 찬스까지 선방으로 막아내던 것이 눈에 선합니다(수원에서 열린 경기였죠). 그런걸 보면 정말 정유석의 능력이 대단했음을 알수 있는데 문제는 이 선수가 그 10골을 먹고난 뒤부턴 빌빌이더군요, 아 그리고 정유석은 저때도 이미 프로였어요, 거제고 다니는데 워낙 잘해서 부산대우팀이 끌고갔죠. 아시다시피 거제고는 부산대우의 연고고등학교였으니까요.
아다일톤은 끝나고 파르마였던가? 로 갔었는데 국대엔 한번도 불려가지 못해서, 브라질 축구의 선수층 이야기 할 때 늘상 단골메뉴로 이야기했었죠. '저만한 놈도 대표 선발 못되는 곳이 브라질이여~'
그때 정말 축구를 좋아하던 하이텔 축구동으로선 정말 열받는 사람 많았죠.
(거기다 그날이 잊을수 없는게 제 생일...6월 22일. 웃기는게 6월 22일에 열린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A매치건 청대건...-ㅅ-, 월드컵 8강전이요? 공식적으론 무승부죠)
어찌 보자면 그 패배로 인해 붉은악마가 돋보일수도 있습니다. 그 6월의 패배를 딛고 7월의 월드컵 예선전 태국과의 경기에서도 모였고 8월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도 응원입고 오는 등 9월의 '붉은혁명'을 위한 하나의 중간길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천에서 뛰던 이대희 선수도 상당히 좋은 선수였죠 키가 190이 넘고 큰 덩치에 뭐 슈퍼세이브도하고 그런 선수인데 이 선수도 컵대회에서 전남하고의 경기에서 6-0으로 지더니만 그다음부터 정유석 판박이가 되더군요.
(이대희선수가 당시 올림픽 팀에서의 김용대 다음의 세컨이었죠)
오죽하면 형진군하고 같이 "한 경기에서 최다실점을 한 선수들의 그 후"를 찾아볼까도 생각햇으니 말입니다.
프랑스의 한 축구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축구에서 의미있는 스코어는 6-0 까지다 6-0부터는 학살이다"
그걸 보면 한국의 경우는 대선배 홍덕영 함흥철 이 두분이 계셨으니...-_-;;;
하여간 6-0이라는 스코어는 여러모로 참 흥미롭습니다. 김용대 선수 대단하다고 생각되는게 그것도 있긴 해요 그렇게 실점하고도 다시 국대 꿰차면서 무실점 경기 낼 정도면 엄청난것이니까요 ^^
글구염 조예선은 폴란드와싸우는데 울나라 승리골넣은인간:황산홍 유상철<<<<
스페인 우리나라패배 골넣은인간:없음
포르투갈전 우리나라패 골넣은인간:김건형이넣음다음은 모르겠네염
;;;;;;;; 어쨌든님들 좀 알려주3요~~~
글구 메플하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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