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6일
Remember My Memories 01.
제목 보고 뭔가 스쳐 지나가는게 있다면 당신을 리프빠로 인정함 (...)
각설하고 한 번 돌이켜보는 나의 기억들. 저번에 '색의 경계'의 싸이에 남겨둔 이야기는 내 기억들 중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아직 수없이 많은 조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가끔 그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울렁거림과 슬픔에 잠기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번 기억의 주제는 내 인생의 동반자처럼 나와 함께하는 Personal Computer 속칭 PC다.
내가 처음 PC를 접한건 94년 1학년 겨울방학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버지가 사무실을 개업하려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당시 최첨단 사무기기였던 PC를 1대 구입, 내방에 갖다놓으셨다.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지만 정말 작은 구형 모니터에 엄청나게 시끄러운 팬을 장착한 당시 물가로 200만원을 넘는 충격적인 가격의 괴물같은 기계. 지금 기억으론 486이었고 마우스는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PC 사용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NCD를 화면에 치고 ENTER 키를 누르면 파란화면에 영어가 뜬다. 다 무시하고 GAME 밑에 있는것들 하고 놀아라.-- 이 한 편의 시구와도 같은 작업을 거친후 나는 처음 컴퓨터 게임의 세계에 눈을 떴다.
처음 내가 접한 게임은 놀랍게도 프린세스메이커2 이하 PM2!!!!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다는 격언을 상기하면 나는 정말 제대로 컴퓨터게임의 첫 스타트를 끊은 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PM2의 오프닝만 보고 공포게임인줄 알고 깜짝놀라 전원을 꺼버렸었다. 고맙게도 PM2는 키보드만으로도 플레이가 가능했는데 가끔 오류가 걸리면 어떤 키도 안 먹혀서 울어버렸던 아동틱한(?) 기억도 있다. 하여튼 처음 키웠던 딸내미는 나랑 나이가 같은 8살 ((ㅡㅡ;;)) 첫 딸내미는 과도한 알바와 돈부족으로 인한 치료미비로 사망했다. 그 충격에 한동안 엉엉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그 때 플레이했던 기억을 더듬으면 마음이 아프다. 첫 딸내미를 사망시켜버린 충격에 PM2를 관두고 시작했던 게임은 레밍즈와 울펜슈타인3D!!!! 그 무렵 겨울방학이 끝나고 국민학교 2학년으로 진급했다.
당시 나의 모교였던 불암(속칭 부X. 순수했던 시절엔 최불암)국민학교는 1,2학년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편성했었다. 1학년 때는 오후반이라 점심먹고 학교갔었다. 2학년 시절. 한 반 38명 중 PC를 가진 사람은 단 2명. 거기서 게임이 깔린 PC를 가진 사람은 나 뿐이었다. 당연히 인기폭발. 우리집으로 매일 아이들의 발길이 끊기질 않았다. 덕분에 1학년 때 삼성게임기(?) 소닉2로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었던 녀석의 질투를 받게 된 나는 그 녀석과 대판 싸웠던 (그래봐야 초딩의 싸움이지만;;) 기억이 난다.
그런 꿈같은 PC 독점(?)기간도 잠시. 아버지가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내 최초의 PC는 내 방에서 사라졌다. 진짜 그 때 모니터 부여잡고 서럽게 울었다. 뭐 결국은 사촌형한테서 패밀리 게임기 얻어서 그걸로 대리만족했지만....
세월이 흘러 96년 1월이었나 세진컴퓨터랜드 노원점이 들어섰다. 당시 PC업계를 선도하던 세진 컴퓨터랜드. 공중파 광고도 엄청나게 해댔고 충격적인 99만원 PC라는 가격파괴를 내세워 PC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세진컴퓨터랜드.--물론 나중엔 대우랑 동반으로 망해버렸지만(..) 우리집도 가정용 PC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봉착. 99만원 짜리 윈도우 95 탑재 PC를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충격적인 파란 하늘 바탕의 부팅화면과 윈도우 로고의 충격 우오오오오오~~ 이 컬쳐쇼크는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건 '이제 컴퓨터 전원을 끄셔도 좋습니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 참 흐뭇하게 컴퓨터를 바라보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 때 즐기던 게임은 놀랍게도 커멘드 앤 컨커 이하 C&C. 내가 처음 접한 전략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영어는 HELLO와 GAME 밖에 모르는 내가 어떻게 이걸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결국 GDI군 엔딩까지 클리어해 대머리 횽인 케인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리는 모습을 ㄲㄲㄲ거리며 지켜봤었다. 그리고 96년에 처음 용산 전자상가를 갔었다. 지금의 썰렁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그 때는 현재는 용팔이 서식지인 터미널상가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고 주차장인 곳에는 차보다 CD노점상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거기서 아버지는 내게 5천원짜리 데모게임 십수개 꿍쳐넣은 CD를 사주셨고 나는 아직도 그걸 소장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내가 4학년 때니 97년이다. 나에게 한 대의 PC가 찾아왔다. 그 PC의 원주인은 내 외사촌형으로 영웅문과 3X3 EYES 성인판(!) H2 모두 전권을 소장. 새벽에 완독하면서 카이스트에 가버린 횽이다*(...) 그 형이 카이스트 입학 기념으로 나에게 넘기고 간 PC는 처음에는 '윈도우 95도 안 깔려있고 뭐야~' 하고 툴툴거렸지만 알고봤더니 무장쟁패2, 심시티2000, 프메2, 삼국지 3,4,5--삼국지5는 윈도우 3.1에서도 돌아간다.--워크래프트2등이 깔린 당시 최강의 게임만 모아놓은 형의 역작(!?)컴퓨터였던 것.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삼국지를 돌리려면 KOEI 확장자명 com 파일을 실행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항상 sam4.exe만 실행시켜보다 안돼서 좌절했던 컴맹이라 심시티2000하고 무장쟁패2만 했었다. 어느날 첨 사귄 친구녀석이 우리집에 놀러왔다. 그 녀석은 우연히도 삼국지 마니아. 무장쟁패만 하다가 우연히 SAM4폴더를 발견한 친구는 '어? 너네 집에 삼국지4 있었네?' 나는 '아.. 그거 실행 안되던데?' 친구왈 '그럼 내가 해보지' 녀석은 능숙하게 koei.com을 찾아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두두두두두두두둥~'하는 북소리(?)와 함께 지난 10년동안 지겹도록 본 KOEI 로고와 삼국지4의 오프닝. 정말 그 때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대항해시대온라인까지 이어지는 KOEI와의 악연(?)의 시작은 이 때부터였다. 순식간에 소중한 벗이 된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와 재수학원까지 같이다녔다 ㄲㄲㄲ.
5학년으로 진학. 이때부터 본격적인 컴퓨터게임시대가 열렸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게임 공략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당시 주제가 됐던 게임은 용기전승2와 삼국지 공명전이었다. 난 둘다 소장하고 있었다 ㄲㄲㄲ.. 용기전승2는 PC게임매거진 V챔프가 1주년 특집으로 뿌렸던 전설의 번들CD로 단숨에 유명해진 명작으로 일본 RPG를 한국 학생들에게 알린 입지전적인 작품중 하나다. 여담으로 이후 파랜드택틱스2같은 류의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일본 RPG에는 미소녀가 있다.'라는 개념이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주입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미연시 대유행의 초석이 다져진 것일지도(...)
용기전승2. 당시 충격이었던건 대부분의 대사가 더빙돼있었다는 점. 한국성우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성우전승(?)이라 불릴 정도로 더빙 성우들의 연기도 괜찮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피나와 중세간호사(?) 코스츔 소녀의 인공호흡을 가장한 키스씬은 5학년짜리에겐 너무 하드했다. 그리고 공명전. 무려 4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구매했던 공명전. 공명전이라지만 사실 조운만 잘 키우면 장땡이었던 공명전. 공명전을 무려 4년 넘게 플레이했고 아직도 가끔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별로 쓸 내용이 없다(...)
이 이후 게임부터야 창세기전3 스타 다 최근 게임이라 별로 써도 추억이라고 하기엔 웃기는 게임들이라 이만 줄인다. 다음 편은 야겜으로 가볼(...)
각설하고 한 번 돌이켜보는 나의 기억들. 저번에 '색의 경계'의 싸이에 남겨둔 이야기는 내 기억들 중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아직 수없이 많은 조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가끔 그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울렁거림과 슬픔에 잠기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번 기억의 주제는 내 인생의 동반자처럼 나와 함께하는 Personal Computer 속칭 PC다.
내가 처음 PC를 접한건 94년 1학년 겨울방학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버지가 사무실을 개업하려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당시 최첨단 사무기기였던 PC를 1대 구입, 내방에 갖다놓으셨다.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지만 정말 작은 구형 모니터에 엄청나게 시끄러운 팬을 장착한 당시 물가로 200만원을 넘는 충격적인 가격의 괴물같은 기계. 지금 기억으론 486이었고 마우스는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PC 사용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NCD를 화면에 치고 ENTER 키를 누르면 파란화면에 영어가 뜬다. 다 무시하고 GAME 밑에 있는것들 하고 놀아라.-- 이 한 편의 시구와도 같은 작업을 거친후 나는 처음 컴퓨터 게임의 세계에 눈을 떴다.
처음 내가 접한 게임은 놀랍게도 프린세스메이커2 이하 PM2!!!!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다는 격언을 상기하면 나는 정말 제대로 컴퓨터게임의 첫 스타트를 끊은 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PM2의 오프닝만 보고 공포게임인줄 알고 깜짝놀라 전원을 꺼버렸었다. 고맙게도 PM2는 키보드만으로도 플레이가 가능했는데 가끔 오류가 걸리면 어떤 키도 안 먹혀서 울어버렸던 아동틱한(?) 기억도 있다. 하여튼 처음 키웠던 딸내미는 나랑 나이가 같은 8살 ((ㅡㅡ;;)) 첫 딸내미는 과도한 알바와 돈부족으로 인한 치료미비로 사망했다. 그 충격에 한동안 엉엉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그 때 플레이했던 기억을 더듬으면 마음이 아프다. 첫 딸내미를 사망시켜버린 충격에 PM2를 관두고 시작했던 게임은 레밍즈와 울펜슈타인3D!!!! 그 무렵 겨울방학이 끝나고 국민학교 2학년으로 진급했다.
당시 나의 모교였던 불암(속칭 부X. 순수했던 시절엔 최불암)국민학교는 1,2학년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편성했었다. 1학년 때는 오후반이라 점심먹고 학교갔었다. 2학년 시절. 한 반 38명 중 PC를 가진 사람은 단 2명. 거기서 게임이 깔린 PC를 가진 사람은 나 뿐이었다. 당연히 인기폭발. 우리집으로 매일 아이들의 발길이 끊기질 않았다. 덕분에 1학년 때 삼성게임기(?) 소닉2로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었던 녀석의 질투를 받게 된 나는 그 녀석과 대판 싸웠던 (그래봐야 초딩의 싸움이지만;;) 기억이 난다.
그런 꿈같은 PC 독점(?)기간도 잠시. 아버지가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내 최초의 PC는 내 방에서 사라졌다. 진짜 그 때 모니터 부여잡고 서럽게 울었다. 뭐 결국은 사촌형한테서 패밀리 게임기 얻어서 그걸로 대리만족했지만....
세월이 흘러 96년 1월이었나 세진컴퓨터랜드 노원점이 들어섰다. 당시 PC업계를 선도하던 세진 컴퓨터랜드. 공중파 광고도 엄청나게 해댔고 충격적인 99만원 PC라는 가격파괴를 내세워 PC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세진컴퓨터랜드.--물론 나중엔 대우랑 동반으로 망해버렸지만(..) 우리집도 가정용 PC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봉착. 99만원 짜리 윈도우 95 탑재 PC를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충격적인 파란 하늘 바탕의 부팅화면과 윈도우 로고의 충격 우오오오오오~~ 이 컬쳐쇼크는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건 '이제 컴퓨터 전원을 끄셔도 좋습니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 참 흐뭇하게 컴퓨터를 바라보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 때 즐기던 게임은 놀랍게도 커멘드 앤 컨커 이하 C&C. 내가 처음 접한 전략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영어는 HELLO와 GAME 밖에 모르는 내가 어떻게 이걸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결국 GDI군 엔딩까지 클리어해 대머리 횽인 케인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리는 모습을 ㄲㄲㄲ거리며 지켜봤었다. 그리고 96년에 처음 용산 전자상가를 갔었다. 지금의 썰렁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그 때는 현재는 용팔이 서식지인 터미널상가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고 주차장인 곳에는 차보다 CD노점상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거기서 아버지는 내게 5천원짜리 데모게임 십수개 꿍쳐넣은 CD를 사주셨고 나는 아직도 그걸 소장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내가 4학년 때니 97년이다. 나에게 한 대의 PC가 찾아왔다. 그 PC의 원주인은 내 외사촌형으로 영웅문과 3X3 EYES 성인판(!) H2 모두 전권을 소장. 새벽에 완독하면서 카이스트에 가버린 횽이다*(...) 그 형이 카이스트 입학 기념으로 나에게 넘기고 간 PC는 처음에는 '윈도우 95도 안 깔려있고 뭐야~' 하고 툴툴거렸지만 알고봤더니 무장쟁패2, 심시티2000, 프메2, 삼국지 3,4,5--삼국지5는 윈도우 3.1에서도 돌아간다.--워크래프트2등이 깔린 당시 최강의 게임만 모아놓은 형의 역작(!?)컴퓨터였던 것.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삼국지를 돌리려면 KOEI 확장자명 com 파일을 실행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항상 sam4.exe만 실행시켜보다 안돼서 좌절했던 컴맹이라 심시티2000하고 무장쟁패2만 했었다. 어느날 첨 사귄 친구녀석이 우리집에 놀러왔다. 그 녀석은 우연히도 삼국지 마니아. 무장쟁패만 하다가 우연히 SAM4폴더를 발견한 친구는 '어? 너네 집에 삼국지4 있었네?' 나는 '아.. 그거 실행 안되던데?' 친구왈 '그럼 내가 해보지' 녀석은 능숙하게 koei.com을 찾아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두두두두두두두둥~'하는 북소리(?)와 함께 지난 10년동안 지겹도록 본 KOEI 로고와 삼국지4의 오프닝. 정말 그 때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대항해시대온라인까지 이어지는 KOEI와의 악연(?)의 시작은 이 때부터였다. 순식간에 소중한 벗이 된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와 재수학원까지 같이다녔다 ㄲㄲㄲ.
5학년으로 진학. 이때부터 본격적인 컴퓨터게임시대가 열렸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게임 공략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당시 주제가 됐던 게임은 용기전승2와 삼국지 공명전이었다. 난 둘다 소장하고 있었다 ㄲㄲㄲ.. 용기전승2는 PC게임매거진 V챔프가 1주년 특집으로 뿌렸던 전설의 번들CD로 단숨에 유명해진 명작으로 일본 RPG를 한국 학생들에게 알린 입지전적인 작품중 하나다. 여담으로 이후 파랜드택틱스2같은 류의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일본 RPG에는 미소녀가 있다.'라는 개념이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주입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미연시 대유행의 초석이 다져진 것일지도(...)
용기전승2. 당시 충격이었던건 대부분의 대사가 더빙돼있었다는 점. 한국성우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성우전승(?)이라 불릴 정도로 더빙 성우들의 연기도 괜찮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피나와 중세간호사(?) 코스츔 소녀의 인공호흡을 가장한 키스씬은 5학년짜리에겐 너무 하드했다. 그리고 공명전. 무려 4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구매했던 공명전. 공명전이라지만 사실 조운만 잘 키우면 장땡이었던 공명전. 공명전을 무려 4년 넘게 플레이했고 아직도 가끔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별로 쓸 내용이 없다(...)
이 이후 게임부터야 창세기전3 스타 다 최근 게임이라 별로 써도 추억이라고 하기엔 웃기는 게임들이라 이만 줄인다. 다음 편은 야겜으로 가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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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6/12/26 23:44 | 망상의 폭주 (역시 위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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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제갈첨 잘키워서 쌍으로 대업화날리는 것도 간지